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제일 어려운 게 사람 대하는 일이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에 정답은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특별한 비결은 분명 존재하는 법. 역사 속 설득의 달인들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에도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는 설득과 공감의 비결을 배워봅니다.
진실을 말하고 진심을 보이세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웅변가라 불리는 데모스테네스는 허약한 체질에 심한 말더듬이였습니다. 약한 몸, 작고 힘없는 목소리, 어눌한 말투와 심한 말더듬증에 사람들의 조롱과 야유를 듣기 일쑤였고 극심한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지요. 그가 7살 때 부자였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많은 사람이 후견인을 자청하며 아버지의 재산을 가로채 갔습니다. 하지만 당시 돈을 찾으려면 소송이 있어야 했고, 고소 당사자가 직접 변론과 연설을 해야만 했어요. 이를 위해 데모스테네스는 피나는 연습을 거듭했습니다. 부정확한 발음을 고치기 위해서 입안에 작은 돌멩이를 넣고 연설했으며, 폐활량을 키우기 위해 가파른 언덕을 뛰어오르며 발성연습을 했고요. 어깨를 추켜올리는 나쁜 습관을 없애기 위해 칼을 천장에 매달아 놓고 연습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뛰어난 웅변가로서 데모스테네스는 수많은 연설문을 쓰는 과정에서 판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정치가가 된 뒤로는 그리스 역사를 꾸준히 공부했는데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8번이나 베껴 썼다고 전해집니다. 특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웅변가로서 그의 진가가 발휘된 것은 조국을 마케도니아에서 독립시키기 위해 아테네 시민을 정치적으로 계몽했던 연설들이었는데요. 그는 이 연설들을 위해 지난 역사를 예로 들어가며 아테네 시민을 진심으로 설득했습니다. 그의 경쟁자였던 피데아스는 “당신 웅변에서는 지난밤에 썼던 등잔불 냄새가 난다”며 비웃었습니다. 즉석연설은 거의 없고 항상 미리 준비하여 말하는 데모스테네스를 비웃는 것이었죠. 하지만 데모스테네스는 “내 등잔과 당신 등잔의 밝기는 분명히 다르지 않소”라고 당당히 대응했습니다. 철저한 준비와 진정성으로 당대를 평정한 웅변가가 된 데모스테네스를 보면 진실은 변하지 않고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실감합니다. 공감의 목적을 이해하고 이를 위해 부단히 공부하고 준비하는 것. 설득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요?
리더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세요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조의 참모로 알려진 곽가는 27세의 나이로 조조를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조조는 곽가보다 열다섯 살이나 많았던 마흔둘이었지만 첫 대면에서 ‘곽가는 내 대업을 달성시켜줄 인물’이라며 그를 최측근에 두었다고 합니다. 곽가가 서른여덟에 지병으로 유명을 달리할 때까지 조조는 그를 총애했고 평생 그리워했습니다. 후한 말 한나라 조정을 등에 업고 활개치던 동탁이 죽자, 동탁의 부하였던 이각과 곽사는 황제를 위협해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난세에 다른 영웅이 천하를 가로챌까 안달하던 조조는 이각과 곽사가 서로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휘하의 장수들은 지금이 적기라며 쳐들어가자고 주장하며 조조의 마음을 부채질했지만, 조조는 애써 머리를 흔들 뿐이었죠. 겉으로는 태연했어도 입안이 바짝 마르는 것이 본심. 좌불안석이었던 조조는 곽가에게 의견을 물었고 곽가는 이렇게 반문합니다.
“주공께서는 스스로를 천하에 바치고자 하십니까, 천하를 얻고자 하십니까?”
“자네가 짐작하고 있는 그대로일세”
“천하를 얻고자 하는 자라면 스스로 다가가는 패기도 있어야 하지만 때로는 천하가 제 발로 걸어올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기다려야 할 때입니다”
그의 말을 들은 조조는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얻었고 그 뒤로는 옆에서 아무리 부추겨도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인내의 시간을 보내던 조조에게 마침내 조정에서 천자를 보필하라는 칙서를 내리고 그날로 조조는 군사를 일으켜 결국 승리하게 됩니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라 자신의 처지에서 생각과 판단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타당성을 부여하려고 하죠. 하지만 곽가는 자신의 입장보다는 조조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했습니다. 조조가 자신이 만든 군율을 스스로 어겼을 때도 ‘법은 귀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곤경에 빠진 조조를 구해내기도 하고, 원소를 두려워하는 조조를 위해 원소가 조조에게 질 수밖에 없는 열 가지 이유를 들어가며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면서 말이죠. 때로는 수많은 말을 늘어놓는 것보다 말없이 손을 한 번 잡아주는 것이 효과적일 때가 있습니다. 조조를 설득하던 곽가처럼 내 입장이 아닌 상대의 성향과 마음 상태를 먼저 파악하면 마음의 문은 자연스럽게 열리게 될 것입니다.
나와 너를 우리로 묶으세요
남아프리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흑인 인권 운동가였던 넬슨만델라는 1962년부터 1990년까지 약 27년 동안 감옥에서 생활했지만, 남아프리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흑인들의 희망이었으며 인종차별 정책에 맞서는 끝없는 투쟁을 이어간 세계인권운동의 상징적인 존재였습니다. 만델라가 종신형을 받고 케이프타운에서 1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악명 높은 정치범 수용소였던 로빈 섬에 갇혀 있을 때였습니다. UN안보리는 결의문을 통해서 그의 석방을 요청했고, 남아공 정부는 만델라의 석방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만델라가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석방은 그가 원하던 승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자유 대신, 백인 정부의 퇴진을 원했던 만델라는 옥중에서 딸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냅니다. 열일곱 살이었던 만델라의 딸 진지 만델라는 시위 현장이었던 소웨토의 축구 경기장에서 아버지의 편지를 낭독합니다.
“나는 나의 자유를 무척 소중히 여깁니다. 그러나 내가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 우리 민족의 자유입니다. 나는 나 자신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여러분 모두의 자유에 대한 권리 또한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의 자유와 나의 자유는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만델라의 옥중서신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세계 각국에서 남아공 정부에 압력을 가했습니다. 마침내 백인 정부는 손을 들고 맙니다. 이후 만델라는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46년간에 걸친 아파르트헤이트(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이었지요.
설득의 법칙 중 변화를 인식하게 하는 ‘개입의 법칙’, 그 변화를 이후 계속 정당화하게 만드는 ‘일관성의 법칙’, 그리고 변화를 공유하는 ‘유대감의 법칙’이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반감이 있던 정치인이라 해도 그와 악수를 하고 친숙함을 느끼게 되면(개입의 법칙) 그 친숙함을 계속 유지하려 하고(일관성의 법칙) 그와 악수를 했던 사실을 상대방과 이야기하면서(유대감의 법칙) 호감을 유지하게 된다는 거죠. ‘나’로 시작해 ‘우리’로 나아가는 만델라의 편지. “여러분의 자유와 나의 자유는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라는 그의 말은 많은 이들에게 완벽한 유대감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나와 ‘너’를 ‘우리’로 묶는 이 유대감은 어떤 칼이나 총보다 강력했습니다.
그럼에도 유머는 잃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의 100달러 지폐에 그려져 있는 프랭클린은 미국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17남매 중 15번째로 태어나 정규교육은 2년밖에 받지 못했지만 틈틈이 책을 읽고 글을 썼지요. 이후 사업가, 발명가, 작가, 외교관, 정치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런던에서 최신 인쇄기술을 배워 온 프랭클린이 인쇄업에 뛰어들었을 때의 일입니다. 거침없는 프랭클린의 패기는 기존의 인쇄업자들을 긴장시켰고, 인쇄업자들은 시 정부와의 계약에서 프랭클린을 따돌리기로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러자 프랭클린은 그들을 자신의 사무실로 초대합니다. 그들이 도착하자 이상한 죽을 한 접시씩 내놓았습니다. 다들 머뭇거리며 먹기를 꺼리자 프랭클린이 먼저 맛있게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마지못해 죽을 먹기 시작했으나 이내 숟가락을 내려놓았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음식이오?” 그러자 프랭클린이 미소를 지으며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톱밥입니다. 제가 요즘 생활이 어려워서 톱밥으로 연명하고 있습니다. 저도 먹고살 수 있도록 여러분이 조금씩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웃는 얼굴에다 침 뱉을 수는 없는 일. 프랭클린의 유머는 인쇄업자들을 완전히 무장 해제시켰고, 비로소 프랭클린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논리 앞에 설득당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유머 앞에 마음의 빗장을 열게 됩니다. 인간이 마음을 내주는 것은 ‘호감’을 지닌 상대이고, 호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바로 유머의 특성이기 때문이죠. 한판 붙으려고 벼르고 있는 사람에게 논리를 들이대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습니다. 자기 나름의 논리로 무장하고 있는 사람과 힘겨루기를 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죠. 끊임없이 자신의 말과 행동을 정당화시키는 일관성의 법칙을 극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긴장된 분위기를 풀어주는 유머입니다. 프랭클린이 칼을 꺼내면 다수의 칼로, 창을 꺼내 들면 다수의 창으로 공격을 하리라 인쇄업자들은 무언의 약속을 했을 겁니다. 그러나 프랭클린이 꺼내든 것은 예상치 못 했던 유머였고 인쇄업자들은 웃으며 설득당할 수 밖에 것이죠.
글. 한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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