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 전인 1863년 7월 미국 남북전쟁의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던 펜실베이니아 주 게티즈버그 전투. 노예해방을 반대했던 남군의 로버트 에드워드 리 장군은 3일간의 공격이 실패하자 간신히 북부 연합군의 포위망을 뚫고 달아난다. 남북전쟁을 끝낼 수 있었던 순간을 날려버린 데 대해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연합군의 지휘관이었던 조지 미드 장군에게 분노의 편지를 썼다. 하지만 링컨은 고심 끝에 이 편지를 부치지 않았다.

미 하버드대 경영대학원(MBA)에서 역사 속 경영의 지혜를 가르치고 있는 낸시 코언 교수는 27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의 ‘링컨 경영학파’라는 기명 기사에서 “그 순간 이 편지를 부쳤다면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한 번의 실수로 기업의 존망이 갈릴 수 있는 현대 경영에서 각 분야를 짚어보고 결정을 내렸던 링컨의 신중한 리더십과 인내를 세계 최고경영자(CEO)들이 배울 것을 권했다. “당시 e메일이 있어서 (성급한 결정으로) 엔터 키를 눌렀다면…”이라는 재미난 가정과 함께.

1863년 1월 1일 링컨이 노예해방선언서에 서명한 지 150주년을 맞은 요즘 미국에서는 ‘링컨 열풍’이 불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1일 취임식 때 링컨의 성경 위에 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한 것을 비롯해 영화 출판 전시 강연 각 분야에서 링컨을 기리는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 그 열풍이 경영 분야로까지 번져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코언 교수는 CEO들이 벤치마킹해야 할 링컨 리더십의 덕목으로 △경청 △역경 속에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이성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오뚝이 정신 등을 꼽았다. 

실제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은 “현대 경영인이 그에게 가장 먼저 배워야 할 덕목은 경청이다. 그는 친소를 가리지 않고 주의 깊게 들었다”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했던 링컨에게나 변혁을 추구해야 할 현대 경영인들에게 똑같이 필요한 것”이라고 밝혔다. 링컨의 경청법은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 일리노이 주 스프링필드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흑인 노예 등의 얘기를 큰 키(193cm)를 숙이면서까지 들어왔던 습관에서 나왔다.

코언 교수가 또 강조한 것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감정을 통제하는 방법이다. 당시 신문들은 그의 행정부에 끊임없는 비판을 가했다. 전쟁에서 승전보보다 패퇴 소식이 더 많았다. 설상가상으로 11세 된 그의 아들이 사망하는 가족사까지 겹쳤다. 소비재 기업의 전략을 짜주고 있는 아리 브룸은 “그런 역경 속에서도 링컨이 공포에 굴복하지 않았던 것은 현장을 찾아다니며 광범위한 분야에서 자문하고 정보를 얻으며 용기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링컨과 비교할 수 있는 CEO로 2000년 제록스를 파산에서 살려낸 앤 멀케이 전 회장을 예로 들었다. 그는 180억 달러(현재 환율로 약 20조 원)라는 부채를 진 제록스를 파산시키라는 온갖 협박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 대신 링컨처럼 기업의 전장이랄 수 있는 매장을 다니면서 고객과 종업원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절망과 역경을 이겨냈다. 그는 2006년 연설에서 “비록 로마는 불타더라도 사람들은 (로마의) 미래가 어떨지 알고 싶어 한다”는 명언을 남기며 성공적으로 제록스를 살려냈다.

링컨에게 비판적인 역사적 평가도 많다. 하지만 코언 교수는 “21세기 경영자들은 링컨의 역사책 위의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한 번 이를 짚어야 할 때”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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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철을 이끈 박태준 회장은 잊을 수 없는 기업가다. 330만5000㎡(100만 평)가 넘는 광활한 땅에서 벌어진 대역사가 일사불란하게 이뤄진 건 전적으로 박 회장의 능력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포스코는 당시 이미 크리티컬 포트 매니지먼트(CRTCPM)라는 ‘계획관리’ 비법을 썼다. 

포철에 가보니 총상황실에 도표가 죽 내려와 있고 각 담당자들의 보고 체계가 일사불란하게 잡혀 있었다. 언뜻 군 작전사령부가 떠올랐다. 계획관리라는 건 이런 것이었다. 모든 계획을 상세하게 세우고 하루에 한 번씩 모두 모여 조정했다. 

직원들에 대한 복리 후생도 당시의 기업들과 비교를 불허했다. 일례로 한비는 엔지니어들을 중심으로 기숙사를 지었다. 하지만 포철에 가보니 돈이 없어 난리 치는 와중에도 전 사원들에게 주택을 다 지어줬다. 

애사심은 생활이 안정되는 데서 출발한다. 자녀들의 교육도 마찬가지다. 당시 이미 포철은 사원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다 세워둔 상태였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포스코 주변 주택단지들은 분양을 거쳐 모두 개인 재산이 됐다. 

‘제철입국, 사업보국, 우향우정신(대일청구권자금, 이 돈으로 실패하면 우향우해서 영일만에 빠져 죽자는 데서 나온 말)’이라는 큰 소명감, 여기에 직원들을 끊임없이 배려하는 리더의 하향온정이 있었기에 포철은 성공할 수 있었다. 

박 회장의 사원들에 대한 사랑은 실로 대단했다. 군 시절 터득했을 것이라고 짐작되는데, 군은 결국 사기로 결정되는 조직이다. 전투력과 사기는 같다. 포철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사기가 오를 것인지 끊임없이 생각한 사람이 박 회장이었다. 

박 회장은 또 ‘우리가 하는 일이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다. ‘세계 철강사의 역사를 다시 쓰자’, ‘가난한 나라를 철강을 통해 부국으로 만들자’, ‘조상들의 피와 땀으로 만든 대일 청구권 자금(우향우 정신)을 가슴에 새기자’. 그는 의미와 비전을 제시한 최고경영자(CEO)였다. 자부심과 열정이 모이면 이미 성공한 조직이다. 



■ 사기와 명분이 합쳐지면 최고가 된다


1987년 삼성전기의 무한탐구실. 각 제품별로 시장 현황, 미래 전망 등에 관한 자료를 모아 놓고 수시로 자유로운 토의와 회의를 가졌다. 인재 교육과 육성을 제일로 여기는 삼성만의 독특한 실험이었다.

제2종합제철은 당시 세계 최고인 미국의 US스틸과 합작회사를 만들려고 했다. 아산만으로 입지가 결정됐는데, 중국으로 수출하기 위한 전진기지 역할 때문이었다. 

US스틸이 자랑했던 산소 제강법이라는 기술도 도입하기로 했는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미국 기술자들을 모아놓고 열었던 강연이 떠오른다. 강연이 끝난 후 질의응답 장면을 보며 깜짝 놀랐다. 

단상에 선 젊은 기술자의 강의가 끝나자 밑에서 듣고 있던 나이 든 퇴역 기술자들이 하나같이 ‘서(sir)’라는 존칭을 붙이는 것이었다. 나중에 미국 기술자에게 “왜 그러느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미국인들은 나이가 아니라 실력으로 존경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저분은 정말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이고, 난 현장의 기술자다. 수준이 하늘과 땅 차이니 당연히 존경하는 것이다.” 그것이 기술입국·보국의 단면이었다. 

포철은 일본에서 기술을 도입했다. 용광로 1시간에 몇 톤이 생산되고, 용적이 얼마이며, 직경과 높이는 얼마인지 등 세부 사항을 일일이 계산하는 식이다. 반면 미국은 ‘어디에 몇 톤짜리 제철소가 있는데, 완공 후 5년 동안 얼마가 생산된다’는 식이다. 

처음부터 내려온 실적 데이터를 베이스로 해서 지금의 최신 기술을 적용해 계산하는 방법이다. 반면 일본식을 도입한 우리는 사전 계산 자료가 꽉 차 있어야 했다. 미국의 데이터는 놀랄 만큼 간단했다. 하지만 결과는 매번 거의 같았다. 서구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계속 업그레이드해 적용하는 계승 발전형인데 비해 우리는 단절형인 셈이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비에 있으면서 리더십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당시 한비에는 공장장이 두 분 있었다. 한 분은 ‘일을 언제까지 하라’, ‘조사해서 보고하라’, ‘시행하라’ 등 과제를 던져주는 스타일이었다. 

생전처음 해보는 일을 어렵사리 해결해 가져가면 “왜 이렇게 했느냐, 왜 내용이 잘못됐느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단순히 일만 던져주고 평가하고 지적하는 스타일이다. “여기서 물으면 되는데 왜 못했느냐”는 건 사후 약방문 식이다. 이런 상사는 부하 직원 야단치기에만 급급하다. 

또 한 분은 일을 시킬 때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스타일이었다. 활용할 수 있는 정보원, 협력자 등을 미리 얘기해 줬다. 기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성과를 창출하는 것이다.

선배로서 가지고 있는 것들을 미리 다 알려주고, 거기에 부하의 창의나 노력이 합쳐지면 게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게 그분의 생각이었다. 모든 사원들이 당연히 후자의 부장을 존경하고 따랐다. 이분이 하는 일은 모두가 참여해 시너지가 창출됐다. 반면 전자의 부장은 마음으로 따르는 이가 거의 없었다. 


■ 인재 육성이 기업가의 도덕이다

조직의 목표를 최대한 빠르고 효율적으로 창출하는 것도 후자의 경우가 더 맞지 않을까. 실수를 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스타일은 이병철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사원이 부정을 저지르면 당사자나 상사의 감독 여부를 따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회장은 사장을 심하게 질책했다. “사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부모에겐 귀중한 아들(자식)이다. 인간은 누구나 견물생심을 가지고 있다. 도를 닦은 도사가 아닌 다음에야 참기 어렵다. 사장으로서 귀한 남의 자식들이 나쁜 길로 들어가지 않도록 정성을 다해야 하는데, 어떻게 했기에 인생을 망치도록 만들었나.” 이런 식이었다. 

이건희 회장도 신경영 때 ‘삼성헌법’을 만들었다. 핵심은 ‘도덕성·인간미·에티켓·예의범절’ 등 네 가지다. 도덕성이나 인간미를 설명할 때 항상 하는 얘기가 “남의 집 귀한 자식 데려다 10년 후 다른 회사 직원보다 나은 사람이 안 됐다면 그야말로 인간미와 도덕성이 없는 기업”이라는 것이다.

사원들이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도록 교육, 훈련시키고 스스로 단련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건희 회장이 말한 인간미와 도덕성이 있는 일이었다. 두 회장 모두 가치 있는 인재의 발전을 중시했다.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과 사회에도 큰 도움이 되는 일이다. 인재 경영에서 놓쳐서는 안 될 대목이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한 ‘10대 성장 동력 선정’ 작업에 참여했다. 세계적인 석학들을 초청해 토론도 많이 했다. 하루는 청와대에서 신성장 동력 선정 위원들에게 만찬을 베풀었다. 노 대통령은 “평생 존경하는 선생님들이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위해 한마디 충고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사람, 즉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 세계가 이미 변화돼 국가가 의제를 선정하고 추진하는 시대는 지났다. 앞으로의 성장 동력은 바로 사람이다.

대통령은 교육에 총력을 기울여 국민의 역량과 자질을 어떻게 올린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요약하면 이랬다. 리더는 조직원들을 스스로 학습하게 하고 깨닫게 해서 훌륭한 인재로 만드는 사람이다. 그게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이병철 회장이 라디오 대담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난 내 시간의 80%를 인재 개발에 썼다.” 

손욱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


 

학교나 회사생활을 하면서 한 번쯤은 리더(leader)를 경험해보셨을 겁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리더를 되고 싶어하죠. 그러나 정작 리더의 위치에 있으면서 팀원들을 잘 이끌지 못했던 리더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부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좋은 리더의 조건 14가지에 대해서 포스팅 합니다.

 

 

1. 일관되어라.

 

이런저런 곳에서 일을 하다 보면, 가장 큰 스트레스가 상사 또는 팀장의 반응을 예측할 수 없을 때죠.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다르게 평가되거나 기대하지 않은 다른 반응이 나온다면 팀원들의 성취감도 떨어집니다.그래서 좋은 방향을 팀원들과 정해서 일관된 행동을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선입관을 버려라

 

팀원을 평가함에 있어, 새로운 분야나 새로운 것을 기존의 가진 관점이나 시각으로 평가하면 안되죠. 과거의 결과나 평가항목, 내용이 아닌 현재의 모습 (또는 미래의 모습) 그대로를 평가해야 됩니다.

 

 

3. 팀원들보다 2배는 열심히 해라.

 

리더라는 자리는 일을 하는 것 뿐만 아니라 각종 정치적 결정이 많은 자리일 것입니다. 각 팀, 외부와의 조율뿐 아니라 팀원들이 보지 못하는 내부 팀의 관리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팀원만큼 내부의 일을 처리하고, 전문적 지식이 부족하다면 그 분야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겠죠. 따라서 팀을 이끌려면 팀원들보다 2배는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4. 팀원이 실제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고, 그 일을 하게 하라.

 

팀원이 실제로 하고 잇는 일과 하고 싶어 하는 일에 괴리감이 있다면 팀원의 일의 효율은 떨어질 뿐 아니라 팀원의 능력도 같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팀원과 충분한 대화를 통해서 하고 싶어하는 일을 찾아주는 것 역시 좋은 더의 조건 입니다.

 

 

5. 칭찬은 모두가 있을 때, 혼날 때는 혼자에게만 해라.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듯이 가능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격려해주세요. 그러나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대상자와 가급적 1:1로 만나서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만 혼내고 바로 잡아주는 것이 중요하죠.

 

 

6. 리더로서 팀원을, 팀원은 리더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라.

 

팀을 운영하면서, 팀원이 생각하는 리더의 모습과 나의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내가 원하는 팀원과 팀원 자신에 대한 평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이야기할 시간을 가져야한다. (회사라면)특히 아래에서 위로 올라온 의견은 굉장히 어렵고, 힘겹게 올라온 내용이기 때문에 겸허히 받아들이고 특히나 그 내용에 대해 반박하지 마세요.

 

 

7.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라.

 

팀원과 만나거나 일하는 환경이 편안하다면 오히려 더 창의적이고 활발하게 일을 할 수 잇을 것입니다. 서로 불편하고 뻘쭘한 사이는 한 공간에 있으면 정말 답답하고 힘들죠. 만약 모임을 처음 조직하였다면 개인적인 친분을 쌓고, 팀원이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8.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언제든지 수용하고 바꿀 수 있는 마음을 갖는다.

 

나의 생각이 항상 옳은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물론 좋은 방향과 목표라면 확고히 나가는 것도 좋지만,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될 떄는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9. 리더로서 잘못이라고 판단되는 점에서는 진심으로 공개적으로 사과를 한다.

 

리더라는 사람도 사람이라 잘못을 하죠. 그러나 문제는 자신이 잘못한 것을 숨기거나 축소하면 문제가 더 커지죠. 팀원에게 전심으로 사과하고, 고치려고 한다면 팀원들도 그의 진심을 알아주고, 함께할 것입니다.

 

 

10.팀원의 의견을 소중히 해라.

 

단체문화를 잘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의같은 상황에서 팀원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죠. 그래서 팀원의 의견은 아주 어렵고 소중한 내용이다. 팀원의 의견을 비판하려고만 하지말고, 일단 그 의견을 받아들여라. 만약 전체의 목표와 맞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목표와 맞추기 위해 의견을 물어보자.

 

 

11. 팀원의 목표를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내가 얻고 싶은, 팀의 목표를 얻기위해 팀원의 목표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 만약 팀을 위해 팀원의 목표를 희생할 수 밖에 없다면, 그에 따른 충분한 보상을 주도록 한다.

  


12. 팀원의 실제 기여한 정도를 명확히 평가한다.

 

팀원의 기여도에 대한 평가가 실제로 이루어진 기여도인지 확인한다. 정확히 판단할 수 없더라도, 그 평가의 차이가 팀원에게 느끼는 정도와 크지 않도록 한다.

 


13. 팀원에게 존경받아야 한다.

존경이라는 것은 강요나 명령,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팀원이 실제로 인정하고 존경할 수 있는 팀장. 리더가 되어야 한다. 부지런함, 성실함이 아닌 현재의 경력이나 실력으로 존경 받을 수 있어야 한다.

  


14. 목표에 대한 명확한 그림을 그려주어야 한다.

팀원이 전체 목표를 잃어버리게 해서는 안 된다. 막연한 목표나 불분명한 정의는 팀원들을 힘들게 한다. 최종 목표는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나중에 오해의 소지가 남지 않도록 정의해야 한다. 이는 팀장.리더가 해야할 일이고, 리더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팀원의 의견을 수렴하여 목표를 정하고, 수정하기도 해야 하지만, 마지막으로 결정을 지어야 하는 것은 리더의 몫이다. 그리고 팀원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달성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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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을 필요로 하지 않는 역할로 보이는 프로그래머일지라도 타인들과의 소통을 향상하는데 리더십은 필요하다. 만약 IT 조직을 혁신 주체로 만드는데 관심이 있다면 리더십을 기르는 일은 핵심 과제다. 여기 리더십을 키우는 문화를 만들어내는 10가지 팁을 소개한다.


■ ‘왜?’라고 물어라


보수적인 문화를 깨기 위해서는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동료들도 같이 동참시켜야 한다. 조직 내에서 ‘그게 우리가 여기서 그렇게 하는 이유다’, ‘그게 회사 방침이니까’, ‘고장도 안 났는데 왜 손을 대?’같은 이야기가 들린다면? 바로 현재에 안주하고자 하는 보수주의가 뿌리를 내린 증거로 볼 수 있다.



■ 사고와 혁신을 장려하라


사람들에게 새로운 솔루션을 개발하고 만들어내는 기회가 주어지는가? 사람들이 완전히 다른 솔루션을 시도해볼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가? 새롭고 혁신적인 솔루션이 조직 내에서 고려 제안될 수 있는 포럼이나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가? 누군가 당신의 직원들에게 물어봤을 때, ‘관리자가 나의 의견을 듣고자 한다’라고 응답할지 생각해보라.



■ 전달자는 죄가 없다


종종 클라이언트 불만사항과 문제들이 조직 내에서 필요한 만큼 관리자에게까지 올라가지 않곤 한다. 상부에 메시지가 전달되면 팀 멤버들이 겪을 상황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고객들의 불만사항은 좋은 것으로 인식해야 해야 한다. 불만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기회다. 클라이언트가 불만을 알리는 것은 당신을 위해서 남기는 것이다. 통계적으로 불만족한 고객 두 명중 한 명만 불만사항을 전달한다. 불만을 남기는 고객들에게 감사하고 당신에게 상부의 관심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 알려주는 팀 멤버에게 감사하라.



■ WIIFM에 비전을 연결하라


조직의 리더로서 당신은 직원들이 흥미를 가지고 참여하고자 하는 미래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 미래를 만들어냈다면 거기에 도달하는 방법을 단계별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WIIFM(what’s in it for me ; 나에겐 뭐가 좋을까?)를 고려해야만 한다. 만약 그들이 조직의 목표 달성을 돕는다면 그게 그들의 개인적 목표 달성에 어떻게 도움이 될까?



■ 큰 그림 속에 그들이 속해있는걸 보여주라


일상적인 작업과 진화에 초점을 맞출 때 큰 그림에 대한 시야를 놓쳐버리곤 한다. 직원들과 그들의 역할이 전체 조직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몇 년 전 필자는 ‘비금융권 직원들을 위한 금융’에 대한 팀을 교육시킬 때 참가자중 한 명이 손익계산서 읽는 법을 복습할 때 ‘저 지출내역은 나네!’라고 이야기했다. 그 순간까지도 그는 전체 조직에 그가 어떻게 조직 내에서 기여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했었다.



■ 그들의 영향력을 상기시켜라


업무가 고객들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잊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조직의 활약 사례를 공유하라. 만약 당신의 사업체가 보험업계라면 당신이 도왔던 가족, 당신이 보호한 삶, 당신이 지킨 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라. 만약 당신의 사업체가 은행업계라면 젊은 커플이 첫 번째 자기집을 사는데 도움을 줬던 이야기를 하라. 통계 숫자에서 실제 사람들의 이야기로 바꿔라.



■ 유대감을 키워라


팀 멤버가 관리자와 리더십 팀에 대해 ‘우리’대 ‘그들’같이 선을 그어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것은 가장 위험한 신호 중 하나다. 모두가 공동 목표를 위해 함께 일하는 일원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서 핵심은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 지와 그 이면의 사고와 논리에 대한 효과적이고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이다. 팀이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면 그들이 스스로 참여할 것이다.



■ 권위주의를 없애라


직원들은 당신을 믿음직스럽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이 지원을 필요로 할 때 편하게 당신에게 다가올 수 있는가? 팀 멤버들의 충성을 받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다가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 업무에 뛰어들라


샘 월튼(월마트 창업자)가 매장을 돌아다니고 고객들과 이야기를 하고 매대를 채운다던 지, 리처드 브랜슨이 비행기 수하물을 싣는 작업을 직접 하는 것과 같은 잘 알려진 이야기들이 있다.

업무에 직접 참여하면 팀웍, 존경을 얻게 되고 사업의 기초에서 당신이 손을 놓고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게 된다. 당신이 직접 소매를 걷어 부치고 현장 업무를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인가?



■ 가치와 감사를 보여주라


직원들의 가장 큰 불만사항은 자신들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감사 받지 못할 때다. 그들이 가치 있으며 감사의 대상인 점을 이야기하고 이를 바꾸는데 30초도 걸리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오랫동안 그러지 않았다면 오늘 바로 현장 업무에 뛰어들고 직원들에게 그들의 중요성을 알리고 그들이 조직에 얼마나 의미 있는지 알려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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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작은 돈을 아껴야 큰 돈을 번다. (절약) 

02. 조기 경제교육이 평생의 부를 결정한다. (경제교육) 

03. 우리 집은 가난하다고 변명하지 마라. (가난) 

04. 책과 신문 속에 부가 있다. (독서) 

05. 본받고 싶은 부자 모델을 찾아라. (스승) 

06. 부는 알리는 것이 아니라 감추는 것이다. (검소) 

07. 시간을 아끼는 사람이 진짜 부자다. (시간관리) 

08. 정직하게 번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 (정직) 

09. 고기를 잡으려면 물에 들어가야 한다. (용기) 

10. 많이 버는 것보다 잘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 (베품) 

11. 남에게 관대하고 자기에게 엄격하라. (자기관리) 

12. 솔직함보다 부유한 유산도 없다. (솔직함) 

13. 가슴에 정열을 품으면 부는 따라온다. (정열) 

14. 부자는 끈기로 무장한 사람들이다. (끈기) 

15. 인생 최고의 투자는 친구이다. (친구) 

16. 자신의 일을 즐기면 부는 따라 온다. (일) 

17.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원칙을 세워라. (원칙) 

18. 젊다는 것이 가장 큰 자산이다. (젊음) 




리더십을 필요로 하지 않는 역할로 보이는 프로그래머일지라도 타인들과의 소통을 향상하는데 리더십은 필요하다. 만약 IT 조직을 혁신 주체로 만드는데 관심이 있다면 리더십을 기르는 일은 핵심 과제다. 여기 리더십을 키우는 문화를 만들어내는 10가지 팁을 소개한다.



■ ‘왜?’라고 물어라

보수적인 문화를 깨기 위해서는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동료들도 같이 동참시켜야 한다. 조직 내에서 ‘그게 우리가 여기서 그렇게 하는 이유다’, ‘그게 회사 방침이니까’, ‘고장도 안 났는데 왜 손을 대?’같은 이야기가 들린다면? 바로 현재에 안주하고자 하는 보수주의가 뿌리를 내린 증거로 볼 수 있다.


■ 사고와 혁신을 장려하라

사람들에게 새로운 솔루션을 개발하고 만들어내는 기회가 주어지는가? 사람들이 완전히 다른 솔루션을 시도해볼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가? 새롭고 혁신적인 솔루션이 조직 내에서 고려 제안될 수 있는 포럼이나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가? 누군가 당신의 직원들에게 물어봤을 때, ‘관리자가 나의 의견을 듣고자 한다’라고 응답할지 생각해보라.


■ 전달자는 죄가 없다

종종 클라이언트 불만사항과 문제들이 조직 내에서 필요한 만큼 관리자에게까지 올라가지 않곤 한다. 상부에 메시지가 전달되면 팀 멤버들이 겪을 상황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고객들의 불만사항은 좋은 것으로 인식해야 해야 한다. 불만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기회다. 클라이언트가 불만을 알리는 것은 당신을 위해서 남기는 것이다. 통계적으로 불만족한 고객 두 명중 한 명만 불만사항을 전달한다. 불만을 남기는 고객들에게 감사하고 당신에게 상부의 관심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 알려주는 팀 멤버에게 감사하라.


■ WIIFM에 비전을 연결하라


조직의 리더로서 당신은 직원들이 흥미를 가지고 참여하고자 하는 미래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 미래를 만들어냈다면 거기에 도달하는 방법을 단계별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WIIFM(what’s in it for me ; 나에겐 뭐가 좋을까?)를 고려해야만 한다. 만약 그들이 조직의 목표 달성을 돕는다면 그게 그들의 개인적 목표 달성에 어떻게 도움이 될까?


■ 큰 그림 속에 그들이 속해있는걸 보여주라

일상적인 작업과 진화에 초점을 맞출 때 큰 그림에 대한 시야를 놓쳐버리곤 한다. 직원들과 그들의 역할이 전체 조직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몇 년 전 필자는 ‘비금융권 직원들을 위한 금융’에 대한 팀을 교육시킬 때 참가자중 한 명이 손익계산서 읽는 법을 복습할 때 ‘저 지출내역은 나네!’라고 이야기했다. 그 순간까지도 그는 전체 조직에 그가 어떻게 조직 내에서 기여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했었다.


■ 그들의 영향력을 상기시켜라


업무가 고객들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잊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조직의 활약 사례를 공유하라. 만약 당신의 사업체가 보험업계라면 당신이 도왔던 가족, 당신이 보호한 삶, 당신이 지킨 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라. 만약 당신의 사업체가 은행업계라면 젊은 커플이 첫 번째 자기집을 사는데 도움을 줬던 이야기를 하라. 통계 숫자에서 실제 사람들의 이야기로 바꿔라.


■ 유대감을 키워라

팀 멤버가 관리자와 리더십 팀에 대해 ‘우리’대 ‘그들’같이 선을 그어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것은 가장 위험한 신호 중 하나다. 모두가 공동 목표를 위해 함께 일하는 일원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서 핵심은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 지와 그 이면의 사고와 논리에 대한 효과적이고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이다. 팀이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면 그들이 스스로 참여할 것이다.


■ 권위주의를 없애라


직원들은 당신을 믿음직스럽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이 지원을 필요로 할 때 편하게 당신에게 다가올 수 있는가? 팀 멤버들의 충성을 받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다가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 업무에 뛰어들라


샘 월튼(월마트 창업자)가 매장을 돌아다니고 고객들과 이야기를 하고 매대를 채운다던 지, 리처드 브랜슨이 비행기 수하물을 싣는 작업을 직접 하는 것과 같은 잘 알려진 이야기들이 있다.

업무에 직접 참여하면 팀웍, 존경을 얻게 되고 사업의 기초에서 당신이 손을 놓고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게 된다. 당신이 직접 소매를 걷어 부치고 현장 업무를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인가?


■ 가치와 감사를 보여주라

직원들의 가장 큰 불만사항은 자신들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감사 받지 못할 때다. 그들이 가치 있으며 감사의 대상인 점을 이야기하고 이를 바꾸는데 30초도 걸리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오랫동안 그러지 않았다면 오늘 바로 현장 업무에 뛰어들고 직원들에게 그들의 중요성을 알리고 그들이 조직에 얼마나 의미 있는지 알려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15년 전 스티브 잡스의 애플 복귀는 쓰러지기 직전의 애플이 다시 태어나는 반환점이 되었다. 복귀 후 8달 만에 애플의 iCEO에 오른 잡스는 냉엄하면서도 예리한 전략으로 망각의 단계에 들어서던 애플을 구해내는데 성공한다.
스티브 잡스가 작고한지 1년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 풍전등화 상태의 애플을 살리기 위해 애플 복귀 직후 내렸던 7가지의 중요한 결단들, 그런 결단들을 지금 다시 짚어보면 좋을 것 같다.
잡스는 하루에만 수십 가지의 결정을 내렸을 터, 이 글은 그런 결정 하나하나를 다루는 철저하고 완벽한 논문이 아니다. 이 글에는, 예를 들어, 아이맥이나 OS X, iPod 같은 신제품 개발을 주도한 그의 몇몇 중요 결정들은 포함하지 않고 있다. 그보다는 기업 운영 측면에서 애플을 살리기 위해 어떤 결단을 내렸는지를 정리해 보려 한다.


■ 고삐를 잡다

스티브 잡스가 내린 결단 중 가장 중요한 결단은 애플을 다시 그의 손아귀에 장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꼭 그리할 필요가 있었던 것은 아니였다.
NeXT 인수를 1996년 후반에 마무리 지은 당시 애플의 CEO 길 아멜리오(Gil Ameilio)는 1997년 1월에 잡스를 애플의 특별 고문역으로 채용한다. 잡스는 고문역 위치에서 있으면서 조언이나 하고 권력 전쟁에서 빠져 있어도 상관없없다. 하지만 이런 것은 잡스의 체질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잡스는 애플의 이사회에 아멜리오를 축줄할 것을 발빠르게 종용했다. 그리고 잡스가 그의 대체자로 지명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사회는 잡스의 의견을 수용했고, 애플의 고삐를 다시 잡스에게 맡기게 된다.


■ 군살을 빼다

잡스가 돌아오기 전의 애플은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하고 다양한 매킨토시 데스크탑 라인업과 랩탑군, 서버 변종 모델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또한 별로 이문이 남지도 않는 프린터 제품군과 디지털 카메라, 그리고 각종 주변기기들을 생산하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해 잡스는 애플의 전체 제품의 70%에 해당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내쳐버린다. 이중 가장 유명한 사례는 아직도 몇몇 사람들의 가슴 한켠이 욱신거리게 만드는 뉴튼 PDA 경우를 들 수 있다.
잡스는 과거의 잘못된 경험을 잊고 완전히 새출발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앞으로 애플이 생산할 매킨토시를 네 조각으로 나뉜 격자로 분류했다. 두 개의 조각은 컨슈머 데스크탑(아이맥)과 랩탑(아이북)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나머지 두 조각은 전문가용 데스크탑(파워맥)과 랩탑(파워북)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 네 조각의 격자 밖에 있는 제품들은 모두 끝을 맞이한게 된다.
iCEO 직을 맡은 첫 해 내린 잡스의 이런 제품군 축소 정책으로 인해 3,000명에 이르는 직원이 해고되었다. 제품군과 직원수의 축소는 처음엔 고통스러웠지만 평범한 제품을 수없이 생산해 내는 대신 소수의 훌륭한 제품 생산에 집중할 수 있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된다.



■ 구조 조정

1996년 애플 이사회는 어떻게 하면 애플을 타기업에 더 비싼 가격에 팔아넘길 수 있을까를 골몰하고 있었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던 잡스는 보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자신에게 굳건한 충성심을 보일 멤버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몇 주 지나지 않아 잡스는 이사회 대부분의 멤버들로부터 사직서를 받아내는데 성공하는데, 1977년도에 잡스와 워즈니악에게 애플을 세울 종자돈을 빌려준 전 애플 CEO 마이크 마쿨라(Mike Makkula)도 이 중 한명이었다.
이들이 비운 공석은 현 오라클의 CEO인 래리 엘리슨(Larry Ellision)이나 애플 부사장직을 맡았던 빌 캠벨(Bill Campbell)같은 잡스의 측근들로 채워진다.

iCEO가 되기 전의 잡스는 NeXT 핵심 인재들을 애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자리에 앉히기 위해 길 아멜리오를 설득했다. 그 결과 OS X 탄생의 주역 아비 테바니안(Avie Tevanian)이 1997년 2월에 애플의 소프트웨어 부문 수석 부사장을 맡게 되었고, 몇 달 뒤 존 루빈스테인(Jon Rubinstein)이 하드웨어 엔지니어링의 수석 부사장직을 맡게 된다. 이후 잡스는 회사의 한정된 자원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여러 제품 단위(Product-centric) 개발 팀들을 싸그리 정리하고, 마케팅 부서와 영업 부서, 생산 부서, 그리고 회계 부서 네 부문으로 회사 전반을 개편한다.
그후 오래지 않아 NeXT의 베테랑 직원들과 ’새로운 CEO’에게 충성할 직원들이 줄줄이 고용되면서 잡스의 급진전인 정책에 반기를 들 임원은 남아나지 않게 되었다.



■ 누설을 막다

애플 CEO 길 아멜리오를 당황하게 만들고 기존 정책 노선을 변경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정보 유출이 애플 직원들에 의해 번번히 자행되었다. 하지만 이런 불순한 움직임은 스티브 잡스 체제에서 완전히 뿌리뽑히게 된다. 임시 CEO직을 수락한지 얼마되지 않은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직원들이 언론과 접촉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노-프레스(no-press) 정책을 제정한다. 앞선 정리 해고에 이어 잡스의 이런 기조강한 정책은 회사 내의 이견을 진압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몇 년 후, 잡스의 노-프레스 정책은 애플 신제품 발표회의 비밀과 서스펜스 그리고 환호를 이끌어 내는 효과로 나타난다. 외부로 흘러나가는 정보를 꽉 움켜지고 컨트롤함으로서 잡스는 언론을 그의 손바닥 위에 올려 놓을 수 있었다.



■ 앙금을 풀다

첫 재임기간 동안의 스티브 잡스는 PC 시장을 전쟁터로 묘사하며 애플과 IBM 사이에 적대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장본인이였다. 또한 그런 분위기의 확장 선상에서, IBM 하드웨어에 운영체제를 제공하던 마이크로 소프트가 그래픽 인터페이스로 유명한 애플 운영체제의 룩 앤 필(Look and Feel)을 복제를 이유로 애플 vs 마이크로소프트로 대결 구도가 이어졌다.

애플과 MS 사이의 원한은 잡스가 애플에서 사임한 1985년까지 계속되었으며, 마이크로소프트, 혹은 윈텔(*Wintel=Windows + Intel)에 대한 깊은 혐오는 그 후로도 애플 문화의 일부로 자리잡게 된다. 그러는 동안 매킨토시의 시장 점유율은 한 자리 숫자로 내려 앉았다.
1996년 애플로 돌아온 잡스는 데스크탑 PC 전쟁은 이제 그 끝을 맞았고 그 승자가 마이크로 소프트라는 것을 인정하는 자세를 취한다. 애플이 이겨낼 수 없는 마이크로소프트와의 대결을 위해 돈과 에너지를 털어넣는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 애플은 그 스스로의 기준 안에서 냉철한 자세로 경쟁에 임해야 했다. 또한 레드몬드의 거인(=마이크로소프트)과 직접적인 경쟁을 하기 보단 협력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쓰러져가는 애플에게도 나은 선택이었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크로스 라이센스 딜 성립 후 마이크로소프트는 상당한 인력을 투입해 이후 5년 간 매킨토시용 오피스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개발하게 된다. 동시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의 성공을 진정으로 독려한다는 것을 보증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1억 5천만 달러에 달하는 애플의 주식을 취득하기로 약속했다. 그 대가로 애플은 인터넷 익스플로어를 매킨토시 운영체제의 기본 웹브라우저로 5년간 사용하는데 동의한다.
1997년 보스턴에서 열린 맥월드(Macworld)에서 스티브 잡스가 발표한 이 유명한 협정(스티브 잡스 뒤에 있던 커다란 스크린에 빌 게이츠가 등장)은 맥 매니아들에게 두 회사의 앙금이 풀어졌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방법 중 하나였다.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성공하더라도 그것이 애플 성공에 해가 되는 것이 아니며, 애플도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발표했다. 마이크로 소프트에 대한 잡스의 이런 입장 변화는 그 동안 구속되어 있었던 애플의 멘탈 에너지가 자유롭게 발산되는 것으로 이어졌고, 개발자들과 팬들이 쾌쾌묵은 주제에서 탈피해 새로운 시장을 정복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 복제품을 말살하다

1994년부터 애플은 기기당 80불의 비용을 받고 Mac OS를 몇몇 하드웨어 업체들의 운영체제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1년 후 이 라이센스 정책의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애플에게 가장 높은 수익을 안겨주던 제품군이 이런 저가 복제품들에게 밀려 매출 감소를 겪어야 했고, 라이센스 정책을 통해 맥 플랫폼을 획기적으로 확장하려던 애플의 계획도 크게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애플로 돌아온 스티브 잡스는 Mac OS 라이센스 프로그램이 폐지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1997년에 출시된 Mac OS 8부터 써드파티 업체들의 라이센스 요청을 스티브 잡스가 거부하면서 라이센스 프로그램도 자연스럽게 중단되게 된다. (UMAX 이 한 업체는 어떻게 OS 8을 1998년까지 사용할 수 있었다.)
하드웨어에서부터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사용자 경험을 애플이 총체적인 통제해야 한다고 믿었던 스티브 잡스, 하지만 애플 이외의 업체가 하드웨어를 만든다는 것은 이런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복제품들에 의해 희석된 매킨토시 브랜드, 만약 아직까지 복제품들이 생산되고 있었다면 애플하면 떠오르는 ‘비밀 엄수’, ’욕구’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며, 애플을 지금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해준 제품을 생산했던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 조나단 아이브를 신뢰하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돌아온 1996년에는 조나단 아이브가 애플 디자인 팀의 수장을 이미 맡고 있는 상태였다. 사실 조나단 아이브는 이미 애플을 떠나리라 마음먹고 있었지만 스티브 잡스의 회사 전반에 관한 프레젠테이션은 보고 난 후 돌연 회사에 남기로 마음을 바꾼다.

스티브 잡스도 처음에는 디자인 부서의 수장 자리에 외부 스타 디자이너를 영입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이브와 대면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관계는 개인적인 친구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디자인 철학에 대한 상대방의 주요 생각이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다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렇게 새로 찾은 동지애로 인해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외부 인사가 아닌 비교적 경험이 적은 디자이너에게 신뢰를 쏟아 붇는다. 그리고 이 한 쌍(물론 디자인팀의 노력도 포함해)은 이제껏 없었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컨슈머 전자 기기 디자인을 창조해 내게 된다.


▶ 성공의 조건
http://me2.do/xjrZZ6Vy

  아빠와 아이의 체험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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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의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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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는 단 한 사람, 고객뿐이다. 

고객은 회장에서부터 하부의 구성원들까지 모두 해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고객이 다른 곳에 돈을 쓰면 결국 우리는 일자리를 모두 잃을 수밖에 없다.”

월마트 샘 월튼(Sam Walton) 창업자의 지론이다. 1962년 설립된 월마트는 1991년 시어즈 로벅을 추월하여 미 소매업계 1위 자리를 차지했으며, 1992년 샘 월튼 사망 당시에는 2000여 점포에 38만명의 종업원을 고용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월마트는 월튼 회장 사후에도 성장을 계속하여 2820억달러의 매출(2005년)과 170여만명의 직원을 고용한 세계 최대 기업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월마트는 백화점 중심의 소매유통산업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은 물론 유통이 제조보다 우위에 서게 함으로써 전 세계 소비자들이 최저가에 제품을 소비할 수 있는 소비자 중심 사회를 견인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시장 조사기관 ‘글로벌인사이트(Global Insight)’사에 의하면 월마트의 저가정책이 경제효율성을 0.75% 향상시키고, 전체 소비재 가격의 3.1% 하락을 가져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 성과에 힘입어 샘 월튼 회장은 1998년 타임에 의해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에 선정되었으며, 월마트는 포천 지(誌)가 선정하는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에 2003·2004년 연속으로 뽑혔다.


샘 월튼은 1962년 K마트 등 ‘빅(Big) 3’가 대부분의 도시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구 5000명이 안되는 아칸소주(州) 로저스에 월마트 1호점을 오픈했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감으로써 새 블루오션을 창조한 것이다. 그는 “살아오면서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인구 5만 명이 되지 않는 지역에선 할인점이 오래 버티지 못한다’며 말리는 말이었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는 “사회적 통념은 무시하라”면서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방법으로 일하고 있다면 정반대 방향으로 가야 틈새를 찾아낼 기회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월튼 회장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디어 때문만은 아니다. 아이디어를 현실에 옮기기 위해 가공할 만한 노력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모든 가구의 생활비를 낮춰주고, 이 세상 사람들 모두 돈을 절약하고 더 나은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비전 달성을 위해 ‘매일 매일 최저가(every day low price)’로 고객들을 맞이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월튼 회장은 전 직원에게 “우리가 1달러를 낭비하면 고객의 주머니에서 1달러를 도둑질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며 절약을 독려했다.


월튼 회장은 늘 “우리 일은 전적으로 인간사업이다”며 “우리는 우리 모두가 잠재력을 최대한 실현할 때까지 서로 나누고, 보살피고, 동기를 부여하고, 감사하고, 봉사함으로써 서로를 북돋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성공의 열쇠는 매장에 들어가서 직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는 것이다”고 강조하며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최고의 아이디어는 창고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점원에게서 나온다”는 것이다.


샘 월튼은 “종업원이 행복하면 고객도 행복하다. 직원이 고객을 잘 대하면 고객은 다시 찾아올 것이고, 바로 이것이 사업 수익의 진정한 원천이다”며 행복한 직원 만들기에 역점을 두었다. 그는 직원들이 고객을 대하는 방식은 경영자가 직원들을 대하는 방식과 똑같다는 것을 잘 알았다. 월마트에서는 ‘직원(employee)’이라는 용어 대신 ‘동료(associate)’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직원과 CEO가 하나가 된 기업이 잘 안될 리가 없다. 창업 이후 승승장구를 계속해 마침내 67세가 되던 1985년, 월튼은 미국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사람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언론에서 앞다퉈 취재한 미국의 최고 부자는 월마트 야구모자에 픽업 트럭을 몰고 다니는 시골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그의 사무실은 세계 최고 기업 창업주라고 하기엔 너무나 작았으며, 시간제 근로자들도 아무런 예고 없이 찾아갈 수 있도록 늘 열려 있었다. 직원들에게 우리는 한 가족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도록 솔선수범의 삶을 살아간 것이다. 리더십은 바로 이런 것이다.



1. 수입 (Earning) 

절대 한 수입에 의존하지 마십시오. 
투자를 통해 두 번째 소득원천을 만들어 내십시오!  


2. 소비 (Spending) 

당신이 지금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구매한다면, 
머지않아 꼭 필요한 것들을 팔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겁니다.  



3. 저축 (Saving) 

소비 후 남은 돈으로 저축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저축 후 남은 것을 소비하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4. 리스크 관리 (Taking risk) 

절대 강에 두 다리로 서서 
깊이를 테스트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마십시오.  



5. 투자 (Inovestment) 

한 바구니에 모든 계란을 담지 마십시오.  



6. 기대 (Expectations) 

정직은 매우 값비싼 선물입니다. 
저렴한 사람들에게 그 것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1950년대 릴리 튤립 컵 컴퍼니라는 주방기기 회사의 영업 책임자가 있었다. 그의 하루 일과는 시카고 인근의 여러 식당을 돌아다니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러던 어느 날 캘리포니아 인근의 한 작은 드라이브인 레스토랑을 발견다. 레스토랑은 햄버거와 밀크셰이크를 사려는 손님들로 넘쳐나 밤늦게까지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 영업 책임자는 특유의 사업 감각으로 주인 형제에게 새로운 가게를 열게 해주면 총 판매액의 0.5%를 지불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형제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 영업 책임자는 1955년 일리노이 주에 메뉴, 매장구조, 운영방식, 심지어 금색 아치의 식당 로고와 주인 형제의 이름을 고스란히 딴 가게를 오픈했다. 그 식당 이름이 바로 맥도날드였고, 믹서기 영업책임자가 맥도날드의 실질적인 창업자인 레이 크록(Ray Kroc)이다. 전혀 새로운 사업에 뛰어든 그때, 그의 나이는 53세였다.

 

레이 크록은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가장 중요한 인물 100중 한 명이자 에스콰이어가 선정한 ‘20세기 미국인의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50중 한 명이다. 그렇다면 레이 크록은 53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어떻게 햄버거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그의 성공에는 세 가지 힘이 뒷받침 되었다.

 

어둠 속에서 묵묵히 실력을 닦아 때를 만나 날아오르듯, 그의 첫 번째 성공 비결은 어떻게 보면 하찮을 수도 있는 종이컵, 믹서기 영업에 30년 동안 매진하면서 얻은 사업에 대한 높은 안목과 과감한 실행력이 만든 것이었다.

레이크록은 사람들은 내가 53세가 돼서야 맥도날드를 창업해 하루아침에 성공했다는 데 놀라움을 표한다. 하지만 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재능을 갈고닦다가, 다가온 좋은 기회를 꽉 잡은 것이다. 내가 하루아침에 성공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아침을 맞이하기 전까지 나는 30년이라는 길고도 긴 밤을 보냈다고 말했다.

 

안목의 힘으로 기회를 잡은 레이 크록이 두 번째로 집중한 것은 바로 디테일이다.

완벽을 꿈꾼 그가 완성시킨 맥도날드의 작업 매뉴얼은 560페이지에 달한다. 철저한 매뉴얼화와 치밀한 고객 데이터 분석을 통해 누가 사업을 하더라도 성공할 수밖에 없는 사업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종업원 행동 하나하나까지도 세심하게 매뉴얼화 하고 전 세계에서 똑같은 서비스를 실시 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체계화 시켰다.

 

이처럼 디테일의 힘으로 성공을 다진 레이 크록이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바로 현장의 힘이다.


과연 53세의 레이 크록이 멀티믹서 8대를 구입한 식당을 찾지 않았더라면 과연 오늘날 맥도날드가 존재했을까? 레이 크록의 성공이 시작된 것은 맥도날드라는 현장을 직접 방문하면서부터다. 또 레이 크록은 맥도날드를 인수한 후에도 경쟁사를 파악하기 위해 밤마다 경쟁사의 쓰레기통을 뒤진 것으로 유명하다.


안목, 디테일, 현장의 힘으로 세계인의 식문화를 바꾼 레이 크록. 그의 세 가지 힘을 완성한 것은 바로 끈기와 의지였다. 끈기와 의지가 있었기에, 쉰이 넘은 나이에 새로운 사업에 대해 도전을 할 수 있었으며,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경쟁사의 쓰레기통을 뒤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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